파리의 미셀 들라크루아 전시 감상(영감의 시작) → 베른의 구시가지(시간을 간직한 도시)
미셸 들라크루아의 그림 앞에서, 몽트뢰가 떠올랐다
미셸 들라크루아가 그린 시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멈췄다.
파리의 골목, 카페, 눈 덮인 거리 — 그림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그 장면들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빛의 온도, 어딘가에서 느낀 것 같은 공기의 밀도.



그리고 2023년 겨울이 떠올랐다.
몽트뢰의 겨울. 호수에 비친 만년설. 골목 어디선가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던 그 아침.
그리고 그때 탔던 기차의 이름 — 벨에포크(Belle Époque).
파리에서 제네바까지, 겨울 기차 여행 시작
첫 스위스 여행에서 본 몽트뢰의 호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늘 가슴 깊이 간직하고 품고 살았던 그 겨울 스위스.
2023년, 딸아이 나이가 스위스 패스로 부모와 함께하면 무료인 마지막 나이였다. 이건 지금 가야 한다 싶었다. 친구 둘도 합류해서, 런던에서 시작하는 유럽 겨울여행을 계획했다.
20년 만에 다시 찾는 몽트뢰.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사랑한 도시. 매년 세계 재즈 페스티발이 열리는 곳.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노엘 마켓과 날으는 산타를 볼 수 있는 곳.
“파리를 떠나는 아침”
겨울비가 오는 파리의 마지막 아침. 내 마음처럼 파리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른 7시 기차를 타기 위해 우버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가 늦었다. 플랫폼이 택시 내린 곳에서 멀어서 엄청 뛰었다. 간신히 열차에 올랐다.

기차에 탔더니 시베리안 허스키가 주인 발 아래에서 편하게 누워 자고 있었다. 유럽 열차에서는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다. 주인이 화장실을 갔다 오는데, 올 때까지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오니 다시 이렇게 편하게.


점심 먹을 시간이 늦을 것 같아 비상식량 전복죽을 준비했다. 객차 사이에 참기름 냄새가 솔솔. 진짜 꿀맛이였다. 모양이 좀 빠지면 어때.^^
카페칸에 가서 차창의 설원을 보며 커피 한잔의 여유.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도 그 향기가 난다. 열차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짦게 배운 불어로 주문을 해 본다.나머지 두 여인은 불어 전공자들이다.^^


파리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제네바에서 환승. 제네바역에서 SBB 러기지 서비스로 짐을 부쳤다. 제네바에서 부치면 4일 뒤 티라노에서 찾을 수 있다. 스위스 패스로 경유지를 자유롭게 들르려면 짐을 간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배낭 하나만 들고 움직이면, 기차에서 내려 30분이든 3시간이든 가볍게 둘러볼 수 있다.
몽트뢰 — 레만 호수가 품은 벨에포크의 도시
몽트뢰에 도착해서 짐을 숙소에 풀고,늦은 점심을 먹었다.

시옹 성 — 바이런이 시를 쓴 호숫가 성
시옹성으로 향했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챙기는 우리는 바빴다.ㅋㅋ20년 전 몽트뢰를 지날 때 환승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던 곳. 그때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시옹성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일정을 넣었는데 — 솔직히 후회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너무 을씨년스러웠다. 호수 위에 서 있는 중세 성은 분명 멋진 곳인데, 겨울 비 속에서는 그 멋이 반감됐다.
더 이상 시옹성에서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우리는 바로 로잔으로 향했다.



로잔 산책 — 호수 위의 고딕 도시
거리를 따라 켜진 은은한 조명들은 로잔의 밤을 더욱 낭만적으로 물들였다. 빛 하나하나가 모여 여행의 소중한 조각이 된다.
대성당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다. 밤공기가 머무는 이 길 위에서 로잔의 진짜 모습을 만났다.
언덕길 골목안으로 고요히 자리 잡은 로잔 대성당은 평일이라 더 고요했다. 하늘이 짙은 청남색으로 물들어 갔지만 점점 더 청아한 칼라로 보이는것 왜 였을까? 그 날의 청량한 로잔의 오후 공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차가운 로잔의 겨울밤, 노엘마켓 가판대에서 풍기는 갓 튀긴 츄로스의 달콤한 향기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였다.
한 입 베어 물면 온몸이 따뜻해지는 달콤한 맛.
로잔을 더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에 오면 시옹성은 여름에 보고, 로잔에서 벨 에포크 증기선을 타는 일정으로 바꿔야겠다는 먼~희망을 가져보았다.


몽트뢰 노엘 마켓 — 크리스마스 마켓의 불빛.날으는 산타, 날지 못하다
로잔에서 몽트뢰로 다시 돌아왔다. 날으는 산타를 보겠다는 일념하에 ㅋㅋ 시간 맞쳐 왔었다.
저녁에는 몽트뢰 노엘 마켓으로. 군밤을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따뜻한 조명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따슨한 뱅쇼 한잔도 마셨다.갓 구운 군밤 한 봉지를 손에 들고 마켓을 걸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몽트뢰. 날으는 산타를 보기 위해 호숫가에 모였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기대감이 올라가는데 — 바람이 점점 세졌다. 결국, 산타는 날지 못했다.
그걸 보려고 기다린 현지인들, 관광객들 모두 실망. 여기저기서 한탄의 소리가 들렸다.
여행은 늘 이렇다. 기대한 건 놓치고, 생각지 못한 걸 만난다.



새벽의 몽트뢰 — 아무도 없는 레만 호수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 아침을 준비하는 베이커리 냄새와 스프를 끓이는 냄새가 비와 함께 골목에 퍼졌다. 감자를 사서 숙소에서 쪄왔다. 그 감자가 벨 에포크 기차 안에서 최고의 한 끼가 될 줄이야.

낯선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설렌다.관광객이 빠져나간 몽트뢰를 온전히 촉촉히 내리는 비와 함께 거닐 수 있었다.
전날 인파에 묵혀 볼 수 없었던 몽트뢰를,20년전 환승시간으로 깊이 느끼지 못한 몽트뢰를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지 못했던 것을 만나러 갔다.
GoldenPass 벨에포크 — 19세기 기차에 오르다

스위스 여행의 꽃은 기차 여행이 아닐까?
고가의 스위스 패스를 발권 하고, 그 가성비를 채우기 위해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 중 벨에포크 기차는 몽트뢰에서 Gstaad를 잇는 기가 막힌 루트. 하루 두 번만 운행하니 일정을 꼼꼼히 짜야 했다.


다크 우드 패널에 터키석 색 벨벳 안락의자. 기차 안에 들어서는 순간 — 아, 이건 그냥 기차가 아니구나.
레만 호수가 발 아래로 펼쳐지다가, 산 위로 올라가면 눈 덮인 알프스 속으로 들어간다.
열차는 1등석은 2+1 배열,2등석은 2+2 배열이였다. 구태여 1등석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는 없어보였는데. 요즘에 다른 블로그에는 좌석이 2등석은 벨벳의자가 아니였다. 차이를 둘려고 바꾼것인지 알 수는 없다.
미국 셀럽들이 사랑하는 스위스 겨울 여행지. Gstaad
약 두 시간 후 Gstaad 도착했다. 모든 건물이 목재로만 지어야 하는 곳이라 엄청 이색적인 풍광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명품샵들이 목재 건물 안에 들어가 있어서, 눈 덮인 상점을 보는 광경이 멋스러웠다.



Gstaad 에서 베른을 거쳐 루체른까지, 하루의 여정
Gstaad를 출발하여 루체른이 도착지였다.
노선상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길인데,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봐야지 — 하는 마음으로 베른에 들렀다.
스위스 패스로 최대한 즐기고 싶었으니까.
베른이면 곰Bear이지.^^ 겨울이란 곰은 볼 수 없었지만, 잠시 3~4시간의 여유로 베른을 둘러보았다.

겨울이라 4시가 넘으니 금방 해가 저물었다. 노을진 골목길에 트램의 그림이 너무 아름다웠다.

에필로그 by 보석디자이너 YOON
파리의 예술적 잔상과 베른의 중세적 고요함은 전혀 다른 매력이었지만, 그 모든 순간은 ‘벨 에포크’라는 하나의 시대 정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호수의 도시, 루체른으로 향하는 여정은 더욱 깊은 예술적 영감을 안겨줄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될 루체른의 풍경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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