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석 디자이너 YOON 과 함께 하는 로마 희년 순례길 ]
로마 판테온에서 머지 않은 골목 길 안.
외관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은근히 화려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대성당처럼 여러 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의 입구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IHS는 예수의 이름을 라틴어로 썻 을때
첫 글자를 따온것이라 한다.

소소한듯 웅장한 성당이 있다.

성당으로 발을 내 딛는 순간 뾰얀 대리석 조각과 고개를 드는 순간 하염 없이 천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간을 마주 한다.
늦은 저녁 방문한 성당.1유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1유로 동전을 넣으면 천장에 붉이 들어온다. 관람자 모두가 나의 1유로에 행복해 질 수 있다.^^
예수회 소속 성당이라 그 당시 활동했던 모습을 천장화의 인물 탐색으로 유추 할 수 있었다.
23시30분 까지 입장이 가능한 곳이다.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에겐 핵이득 같은 관람시간이다.^^
일정 바쁘지 않게 늦은 저녁에 나들이 처럼 갈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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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POINT 1.성 이냐시오 성당의 두 개의 트릭 아트- 착시효과를 주는 회화작품 (안드레아 포초 작품)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 1642-1709)는 예수회 소속의 수사이자 화가, 건축가, 미술 이론가였다.
그는 특히 ‘콰드라투라(quadratura)’ 기법의 대가로 유명하다.라틴어 quadratus (네모난, 사각형)에서 온 말인데,
바로크 시대의 환영(illusionism) 기법을 말한다.주로 천장화나 돔에 많이 쓰였고, 실제 공간보다 더 넓고 높아 보이게 하는 효과.
La finta cupola( 중앙 제대 위 페이크 돔) : 건축적 요소를 그림으로 그려 평평한 천장을 실제 돔이나 하늘이 뚫린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극대화로 표현 하였다. 돔을 받치는 역삼각형 부분에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복음서를 쓴 인물이 표현되는 것과 다르게 이 곳에는 구약성서 속의 네명의 영웅들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회화속에 이미지로 인물들을 유추 할 수가 있다.이는 예수회가 교황청이 당시 주도하고 있던 반 종교개혁의 가장 앞장섰던 수도회라는 점에서 수도회의 정신을 이 구약성서 속 전쟁 영웅들에 빗대고 있다.
다비드는 노란색 옷을 입고 한 손에는 큰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이마에 돌을 맞아 퉁퉁 부은 채 목이 잘린 골리앗의 목을 들고 있다.파란색 옷에 피 묻은 칼을 들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목을 들고 뿌듯하게 바라보는 유디트
파란 옷을 입고 나귀턱뼈를 휘둘려 천 명을 죽였다는 삼손,망치를 들고 시스라라고 하는 사람의 관자놀이를 치고 있는 아엘.
La volta( 천장화) : 성당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대화하는 건축 형태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성당을 장식하는 것을 넘어,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예술적 기술과 종교적 의미를 집약한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실제의 높이보다 3배의 깊이 감으로 하늘을 곧 맞닿을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에 깃든 의미

‘성 이냐시오의 영광’은 예수회 창시자인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승천과 예수회의 전 세계적 선교 활동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회의 영광: 그림의 중앙에는 성 이냐시오가 십자가를 진 예수님께 이끌려 천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회가 ‘더 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Ad maiorem Dei gloriam)’라는 모토를 실현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상징한다.그림속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 예수회를 도왔던 분이시다.

세계 선교의 알레고리: 천장화의 네 모서리에는 각각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성 이냐시오가 들고 있는 책에서 발산된 신성한 빛이 이 네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예수회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활발한 선교 활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천장화 4곳의 모퉁이에는 예수회의 전 세계적 선교 활동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람 포인트 2. Il presbiterio 중앙 제단화 (안드레아 포초 작품)
3단 벽화 왼쪽 순으로…
왼쪽 :이냐시오 성인이 그 앞에 무릎 꿇고 긴 십자가와 지팡이를 들고 있는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인도로 보내며 축복하는 순간의 모습이다.
오른쪽: 검을 옷을 입은 이냐시오 성인 앞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이 남자는 프란체스코 보자르 성인으로 후에 예수회 3대 총장에 임명되는 인물이다.원래는 스페인 간디아 지역의 총독까지 올라갔던 인물이지만 항상 마음에 수도사의 삶을 실행하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었다가 아내가 죽고나서 예수회에 입회했다 한다. 이냐시오 성인이 세속의 삶을 버리고 예수회로 들어오고자 하는 프란체스코 보르자를 받아 주는 장면이다.
가운데: 이냐시오 성인이 예수께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하늘에는 축복을 내리는 손동작을 하고 있는 성부 하느님의 모습이 지구의 모습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예수회를 창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라 스토르타 마을에서의 환시를 묘사하고 있다 한다.
하느님께서 이냐시오 성인과 예수님을 한 자리에 있게 하며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라는 메세지를 주었다고 하는 모습이다.
이냐시오 성인이 환상 속에서 들었던 말을 천사들이 들고 있는 타원형 장식에 ‘EGO VOBIS ROMAE PROPITOVS ERO’ 의 메세지가 적혀있다.



‘EGO VOBIS ROMAE PROPITIVS ERO’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
3단 제단화 후면(앱스)공간에는 완벽하게 평면처럼 느껴지는 가상의 건축물을 그려넣음으로서 또 우리의 눈을 속이고 있다
평평한 천장에 돔을 그려 넣더니 이번에는 오목한 곳을 평평하게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본인의 실력을 뽑내듯이,암튼 안드레아 포초는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고대의 ‘현실 트릭 아트의 창시자’ 인듯하다.
관람포인트 3. 중앙 제단을 기준으로 오른쪽 제단 건축물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의 영광
중앙의 대리석 제단화는 성 알로이시우스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나타내었다.


예수의 소속 신학생.흑사병에 맞서 로마에서 사람들을 돌보다 어린 나이에 사망한 신학생으로 성인으로 시성이 되었다 한다.
참회와 순결의 상징이 성인의 유해가 들어 있는 청금석 항아리가 제단 아래에 안치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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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포인트 4. 중앙 제단 기준 왼쪽 건축물-제단 부조 수태고지 (필리포 델라 발레라 작품)
회오리 치듯 거대한 천동액자 안에 금방 이라도 날개 짓을 하며 나올 것 같았다.




천사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며 그 앞에 순명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을 예고 하는 수태고지의 장면의 부조
보통 그림으로 많은 서양화에서 볼 수 있는데 조각으로 보니 더 생동감이 느껴졌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제단화를 부조로 장식하는 건 드문 일이었는데 바로크 시기가 되면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다.
무덤에는 22세밖에 안된 젊은 나이에 로마에서 열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예수회 소속 요한 베르크만스 성인으로 1888년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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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포인트 5.루비도시 예배당 -그레 고리안 15세 교황 무덤(프랑스 출신 피에르 르 그로 작품)
붉은색 대리석 커튼의 질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부분적으로 직물을 콜라보 한 작품일까 싶었다. 그러나 온전히 대리석으로 커튼의 장식 질감을 살렸다. 높은 교황의 삼중관을 쓰고 한 손으로 축복을 내리고 있는 그레고리안 15세 교황이 있다.


루도비코 무덤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공부했던 교황은 대학 부속 성당이였던 이냐시오 성당과 예수회에 대한 강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15세 즉위전부터 그레고리안 대학과 성당은 자금이 많이 부족해서 예수회 소속 사람들이 직접 만들었다 한다. 이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 교황은 본인이 즉위 하면서 해외 선교를 중시하는 예수회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취하고,1622년 예수회를 설립한 두 인물 성 이냐시오 디 로욜라와 프란체스코 하비에르를 모두 성인으로 시성하게 되었다.자신의 조카인 루도비코,루도비시 추기경에게도 성 이냐시오 성당과 그레고리안 대한 건축을 후원하도록 지시하고 선종하였다 한다. 그 이후 1626년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지기 시작해서 1650년 완공 되었다.
이리하여 교황의 지시로 이 성당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었던 조카 루도비코 무덤이 교황의 모습 아래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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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로마: 교황의 권력과 예술이 만개한 바로크 예술의 심장
천국을 맛 보고 싶은 모든 인간들의 바램이 건축과 예술이 정점을 찍다.
15세기 르네상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의 건축 양식을 닮았다.



산 이냐시오 성당의 전신인 예수회소속
1650년, 로마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교황청이라는 거대한 종교 권력이 도시 전체를 통치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예술 양식인 ‘바로크’를 꽃피운 곳. 이 시대의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신앙심과 권력을 동시에 과시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신자들에게 강렬한 종교적 감동을 주어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다.
교황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오늘날의 국가 원수와 같은 세속적인 군주였다.그는 막대한 재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맞서 가톨릭 교회의 위상을 드높여야 했던 시기였기에, 교황청은 종교적 가치를 시각적으로 웅변할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었다. 바로크 예술은 그들의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웅장하고 극적인 작품들은 교회의 권위와 신앙의 위대함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예술은 그들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신앙과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였던 것이다.
에필로그 by 보석디자이너 YOON
어떤 이에게 천국이라는 단어가 허구 일지 모르나, 믿는 자에겐 천국이란 현실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도 한다.이처럼 그들의 염원은 붓의 흔적과 빛으로 남겨져,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뜨거운 감동과 함께 그 시대의 간절한 믿음을 전하고 있다.
결국 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가장 깊은 소망과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 희년에 성스러운 성문을 지나 본인의 죄를 씻어내고, 고해 성사를 통하여 정결한 심신 상태를 갖추려 한다.
천국을 돈으로 사는 사람도 있었다.부패한 시절 면죄부를 받기 위해 돈으로 거래를 하고 ,고대 로마 사람들의 삶이 정치적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긴 했지만 여전히 진실로 천국을 그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권력과 의도적인 정치와 인간의 욕망이 있었기에 인간 한계를 넘어 오늘 날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을 마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많은 예술가가 바랬던 천국 같은 곳.악보다 정의가 승리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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