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치아 주데카 운하 건너편, 작은 섬 위에 자리한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San Giorgio Maggiore).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한 순백의 신고전주의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면, 제단 양옆 벽면을 가득 채운 두 점의 거대한 회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틴토레토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그린 〈최후의 만찬〉(Ultima Cena)과 〈만나의 수집〉(La Raccolta della Manna)이다. 두 그림은 단순히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을 잇는 하나의 신학적 서사로 마주보고 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제단부 양쪽 벽에 〈만나의 수집〉과 〈최후의 만찬〉이 마주 걸린 배치는 우연이 아니다. 만나가 광야에서 백성을 살린 ‘하늘이 내린 양식’이라면, 성체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새로운 하늘의 양식’이다. 구약의 만나가 신약의 성체를 예표(豫表)한다는 신학적 도상학(typology)에 따라 두 작품이 짝을 이루도록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이다. 양식적으로도 두 그림 모두 대각선 원근법과 극적인 명암 대비를 공유하며, 틴토레토가 말년에 도달한 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화풍을 잘 보여준다.
틴토레토, 베네치아 화파의 마지막 거장
야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1518–1594)는 티치아노, 베로네세와 함께 16세기 베네치아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다. 평생 베네치아를 거의 떠나지 않았던 그는 산 로코 대신도 학교(Scuola Grande di San Rocco)의 연작으로 명성을 쌓았고, 말년에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제단화 작업에 몰두했다.
〈최후의 만찬〉과 〈만나의 수집〉은 1592년부터 1594년 사이, 그의 사망 직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베네치아 르네상스 회화가 매너리즘으로 넘어가는 양식적 전환을 압축해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만나의 수집> — 광야에서 거둔 하늘의 양식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해거름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떡을 실컷 먹고 나서야 너희는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하고 일러주어라.”
저녁때가 되자 난데없이 메추라기가 날아와 그들이 진을 친 곳을 뒤덮었다. 아침에는 진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안개가 걷힌 뒤에 보니 광야 지면에 마치 흰 서리가 땅을 덮듯이,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출애굽기 16:13–15).

‘만나’에 관한 기록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16장에 등장한다.
광야에서 굶주림을 호소하는 백성에게 하느님이 양식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아침마다 이슬이 걷히면 땅 위에 서리처럼 가는 것이 덮여 있었다는 내용이다
백성들이 그 정체를 몰라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데서 히브리어 이름 ‘만‘이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거두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출애굽기 16:35).
제단 왼쪽 벽에 걸린 〈만나의 수집〉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하느님이 하늘에서 내려준 양식 만나를 거두어들이는 장면을 그린다. 화면 속 인물들은 전통적인 종교화처럼 경건하게 정렬해 있지 않다. 빨래를 너는 여인, 물동이를 인 여인, 땅을 살피는 사람 등 일상의 노동에 가까운 동작으로 묘사되어 있어, 신성한 기적이 평범한 삶의 한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한다.
〈최후의 만찬〉 — 빛과 어둠 속의 성찬 제정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복음 26장26-28)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명 작품이 식탁을 화면 정면에 두고 그리스도를 좌우대칭의 중심에 놓은 것과 달리, 틴토레토는 식탁을 화면 깊숙이 대각선으로 배치해 강렬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천장에 매달린 등잔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조명과 그리스도의 머리를 감싸는 초자연적 광채가 동시에 화면을 비추며 극적인 명암 대비를 이룬다. 사도들 외에도 시중을 드는 하인들이 다수 등장하고, 연기처럼 흩날리는 천사들의 형상이 더해져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식사로, 신약성경 마태오복음 26장, 마르코복음 14장, 루카복음 22장에 각각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빵을 떼어 “이는 내 몸이다”라 말하고 포도주 잔을 들어 “이는 내 피다”라고 말하는 이 장면에서 카톨릭에서 행하는 성체성사(eucharist)가 제정된다(루카복음 22:19–20).
한편 요한복음 6장에서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 칭하며(요한복음 6:48–51), 광야의 만나와 자신의 몸을 직접 연결 짓는다.


에필로그 by 보석디자이너YOON

틴토렌토의 걸작이 있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은 엘리베이터로 이동 가능한 종탑.
여름시즌에는 아침을 시작하고 겨울시즌에는 베네치아의 일몰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성당 종탑에 오르면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이 한눈에 들어오는 베네치아 최고의 전망을 만날 수 있다. 제단 양옆의 두 그림을 먼저 천천히 마주한 뒤 종탑에 오르면, 빛과 신앙이 교차하는 이 작은 섬의 의미가 한층 깊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