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디자이너 YOON의 스타일링] 주얼리 언어로 말하다 —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외교

주얼리로 세계를 말하다 —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외교

“나는 주얼리가 나만의 외교적 무기고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 매들린 올브라이트

세상에는 말보다 강한 언어가 있습니다.

1994년 겨울, 뉴욕 유엔 본부.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는 초록색 재킷 위에 작은 핀 하나를 달고 이라크 관리들이 기다리는 회의장으로 들어섰습니다.
금빛으로 또아리를 튼 뱀 한 마리. 길이 6센티미터의 18K 앤티크 서펀트 브로치였습니다.
그날 그 방에서 말 한마디 필요 없었습니다.

브로치 외교의 탄생 — “나를 밟지 마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뱀 브로치 이라크 외교 — 18K 골드 앤티크 서펀트 핀
1994년, 유엔 대사 올브라이트가 이라크 회의에 착용한 18K 골드 뱀 브로치. 후세인 측이 그녀를 “비할 데 없는 뱀”이라 불렀고, 그녀는 그 말을 핀으로 돌려줬다.

올브라이트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공개 비판하자, 후세인의 전속 시인은 공식 성명에서 그녀를 “비할 데 없는 뱀(unparalleled serpent)” 이라 불렀습니다. 국가 권력이 한 여성을 뱀이라 불렀을 때, 올브라이트의 대응은 분노도 항의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서랍 속의 앤티크 뱀 브로치를 꺼내 옷깃에 달았습니다.

미국 독립혁명의 깃발 문구 그대로였습니다. “Don’t Tread on Me.”

그 날 이후, 브로치는 그녀의 외교 서명이 되었습니다.
조지 H.W. 부시가 “Read my lips”를 말했다면, 올브라이트는 말했습니다. “Read my pins.”

벌처럼 쏜다 — 아라파트 협상의 벌 브로치

매들린 올브라이트 벌 브로치 아라파트 중동 평화협상 — 에나멜 다이아몬드 웨이스프 핀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와의 중동 평화협상. 테이블 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미래가 놓여 있었고, 올브라이트의 재킷 위에는 황색과 흑색 에나멜의 벌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말 —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 를 핀 하나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협상이 원활할 때는 무당벌레를, 날카로운 메시지가 필요할 때는 벌이나 말벌을 달았고, 진척이 없으면 거북이·달팽이·게 브로치 순으로 답답함을 표현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훗날 회고했습니다. “그는 (벌침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평양에서 성조기를 달다 — 김정일과의 회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기 브로치 김정일 북한 평양 방문 — 골드 성조기 핀
2000년 평양. 올브라이트는 김정일 옆에서 성조기 브로치를 달고 민주주의 가치를 선언했다.


2000년 10월. 미국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올브라이트의 어깨 위에는 라인스톤과 금빛 도금으로 제작된 대형 성조기 브로치가 달려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배지는 국가에 대한 충성 그 자체입니다. 모든 국민은 국가 창시자의 배지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하며, 달지 않으면 정치적 불복종으로 처벌받습니다. 그 땅에서 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의 깃발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말보다 선명한 선언이었습니다.

자유의 여신 — 두 눈이 시계인 브로치

매들린 올브라이트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 시계 눈 — 히스 바커 실버 핀


올브라이트 컬렉션 중 가장 위트 있는 작품입니다. 네덜란드 아티스트 히스 바커(Gijs Bakker)가 제작한 실버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인데, 눈 자리에 시계 두 개가 달려 있습니다. 하나는 정방향, 하나는 역방향으로.
면담이 길어질 때, 올브라이트와 상대방 모두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 위에 실용적 유머를 얹은, 올브라이트 특유의 감각이 담긴 핀입니다.

평화의 새와 게의 차이 — 협상 온도계 브로치들

매들린 올브라이트 비둘기 브로치 중동 평화협상 — 골드 새 실루엣 핀
중동 평화협상이 순조로울 때 올브라이트가 즐겨 착용한 골드 비둘기 브로치. 협상이 막히면 거북이로, 최악일 땐 게 브로치로 바꿨다.

올브라이트에게 브로치는 기분의 온도계였다고 합니다.

  • 비둘기·꽃·풍선 — 낙관적이고 분위기가 좋을 때
  • 거북이·달팽이 —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 게(crab) — “진짜로 짜증날 때(when truly aggravated)”

협상 당사자들이 그녀의 브로치를 먼저 확인하는 일이 생겼다 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빌 클린턴에게 “러시아 외교관들이 회의 전 올브라이트의 브로치를 확인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는다”고 고백할 정도였다네요.

세계를 품은 지구본 브로치, 이야기를 담은 산호 브로치


진감색 에나멜 위에 금빛 대륙이 떠오르는 지구본 브로치는 올브라이트의 역할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세계를 무대로 한 외교관의 어깨 위에 세계가 달려 있었습니다.

골드 산호 가지 위에 케시 진주와 오렌지 사파이어·핑크 투르말린이 흩뿌려진 이 브로치는 컬렉션 중 파인 주얼리 계열에 속합니다. 올브라이트의 컬렉션이 코스튬 주얼리에서 앤티크 파인까지 넘나들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특정 외교 사건과의 연결 기록은 없지만 자연물을 모티브로 한 그녀의 미감을 잘 보여줍니다.

“Read My Pins” — 200개의 핀, 하나의 역사


올브라이트의 컬렉션은 2009년 Read My Pins: Stories from a Diplomat’s Jewel Box 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미국 각지의 박물관과 스미스소니언을 순회하며 전시되었습니다. 현재는 워싱턴 D.C. 미 국립외교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Diplomacy)에 상설 소장되어 있습니다.

200점 중 대부분은 파인 주얼리가 아닙니다. 코스튬 주얼리, 이름 모를 디자이너의 핀, 딸이 만들어준 발렌타인 하트 브로치까지 —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값이 아니라 언어였습니다.

“나는 올바른 순간의 올바른 상징이 관계에 온기를 더하거나 필요한 날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 매들린 올브라이트

depuis1998 이후부터 수 많은 주얼리를 연구,디자인,마케팅을 한 사람이죠.
저는 올브라이트의 이야기를 단순한 패션 에피소드로 읽지 않았습니다.

브로치는 의복 위에서 가장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얼리입니다. 귀걸이나 목걸이가 착용자의 몸에 가깝게 붙어 있다면, 브로치는 가슴 위에서 세상을 향해 발언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권위와 신념의 상징이었고, 왕과 교황과 장군의 가슴을 장식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그 언어를 현대 외교의 테이블 위로 가져왔습니다. 뱀, 벌, 비둘기, 게, 지구본, 성조기 — 각각의 핀은 수십 페이지의 외교 문서보다 빠르고, 어떤 통역사도 필요 없이 전달되었습니다.

저는 비옹의 브로치를 만들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달고 어떤 자리에 서게 될까. 어떤 말을 대신하게 될까. 주얼리는 장식이기 이전에, 착용하는 사람의 언어입니다.

올브라이트처럼, 오늘 당신의 브로치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참고: Madeleine Albright, Read My Pins: Stories from a Diplomat’s Jewel Box (HarperCollins, 2009) / 미 국립외교박물관 온라인 전시 readmypins.state.gov